금성대군, 조선 역사상 가장 외로운 충신
지금까지 계속 나온 이름들이 있습니다. 세종, 문종, 단종, 세조. 그런데 이 이름들 사이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 한 사람이 있어요. 세종의 아들이면서, 세조의 친동생이면서, 단종의 삼촌이면서, 죽을 때까지 단종 편이었던 사람.
금성대군.
왕도 아니었고, 신하도 아니었고, 역적이라고 불렸지만 오늘날 신(神)으로 모셔지는 사람입니다. 이 번외편은 그 이야기입니다.
금성대군은 누구인가
금성대군은 1426년 음력 3월 28일에 태어났습니다. 세종대왕의 여섯 번째 아들이에요. 형들이 쭉 있습니다. 맏형 문종, 둘째 형 수양대군(세조), 셋째 형 안평대군, 넷째 형 임영대군, 다섯째 형 광평대군. 그리고 금성대군. 세종의 아들 중에서 금성대군은 특이한 위치였어요.
형 수양대군처럼 야망이 넘치지도 않았고, 형 문종처럼 세자로서 무거운 짐을 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왕자였어요. 나라가 평화롭게 흘러갔다면, 평생 한양 어딘가에서 조용히 살다 갔을 사람입니다. 그런데 역사가 그를 조용히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형제들 사이에서 혼자 다른 선택을 한 사람
1453년,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켰습니다. 세종의 아들들, 즉 금성대군의 형제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대부분이 수양대군 편에 섰어요. 살아남기 위해서였습니다. 혹은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서였어요. 형제 중에서 안평대군은 수양대군에 맞섰다가 사사됐습니다.
그런데 금성대군은 달랐어요. 안평대군처럼 자신이 앞장서서 대항하지는 않았지만, 수양대군 편에 붙지도 않았습니다. 형의 행위를 반대하고 조카 단종을 보호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 결심이 금성대군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어요.
유배, 그리고 다시 유배
1455년, 수양대군이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았습니다. 그 직후, 금성대군은 유배를 갔어요. 무사들과 결탁해 당여를 키운다는 죄명이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수양대군 입장에서 금성대군은 위험한 사람이었어요. 왕족이고, 단종의 삼촌이고, 수양대군 편이 아니니까요. 유배지는 삭녕이었다가 광주로 옮겨졌어요.
그런데 1456년, 사육신 사건이 터집니다. 성삼문, 박팽년 등이 단종 복위를 시도하다 실패하고 처형됐어요. 이 사건 이후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로 유배됐습니다. 그리고 금성대군의 유배지도 바뀌었어요. 경상도 순흥으로. 서울에서 멀고 먼 땅이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생각해볼 것이 있어요. 유배지에 있던 금성대군은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요?
순흥에서의 마지막 거사
순흥에 안치된 금성대군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순흥부사 이보흠과 함께 고을 군사와 향리를 모았어요. 경상도 일대의 선비들에게 격문을 돌려 의병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목표는 하나였어요. 단종 복위. 조카를 다시 왕좌에 올리는 것. 그게 옳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거사 직전이었습니다. 관노 한 명이 이 사실을 세조 측에 밀고했어요. 군대가 순흥으로 들이닥쳤고, 금성대군은 그 자리에서 붙잡혔습니다. 1457년 음력 10월 21일. 금성대군은 32살의 나이로 사형을 당했습니다. 같은 해, 같은 달. 영월 유배지에서 단종도 17살에 세상을 떠났어요. 삼촌과 조카가 같은 해에, 같은 달에 세상을 떠난 겁니다.
금성대군 왜 그는 포기하지 않았나
금성대군의 생년월일은 1426년 음력 3월 28일입니다. 사주팔자로 풀면 이런 구성이 나와요.
년주(年柱): 丙午 (병오) — 강한 火의 기운
월주(月柱): 壬辰 (임진) — 水와 土의 기운
일주(日柱): 丁卯 (정묘) — 火와 木의 기운 (일간: 丁)일간(日干)이 丁(정)화, 즉 촛불 같은 불의 기운입니다. 丁火 일간은 이런 사람이에요.
- 따뜻하고 헌신적입니다.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해요.
- 한번 믿으면 끝까지 갑니다. 배신이나 타협을 모릅니다.
- 불꽃처럼 타오르지만, 그 불이 다 타면 꺼집니다.
- 외로움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기운.
명리학에서 丁火는 큰 불(丙火)과 다릅니다. 丙火가 태양처럼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불이라면, 丁火는 어두운 밤에 홀로 타오르는 촛불입니다. 주변을 따뜻하게 해주지만, 자기 자신은 조금씩 타들어가요. 금성대군의 삶이 딱 그랬습니다.
왕도 될 수 없었고, 왕을 구하는 데도 실패했지만, 그 촛불 하나가 6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꺼지지 않고 있습니다.
세종의 아들들 중 가장 다른 선택
이 시리즈의 큰 이야기는 세종의 유산이 비극으로 이어졌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금성대군의 이야기를 보면 다른 생각이 듭니다. 세종의 아들들은 대부분 살아남기 위해 수양대군 편을 선택했어요. 그게 이성적인 판단이었습니다.
하지만 금성대군만은 달랐어요. 이성적으로 보면 말이 안 되는 선택이었어요. 유배지에서 의병을 모아 조선 최고 권력자인 세조에 맞선다는 게.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丁火는 그 이유를 말해줍니다. 촛불은 끄라고 해서 꺼지지 않습니다. 스스로 다 타버릴 때까지 타오릅니다. 금성대군은 그냥 자기 본성대로 살았어요. 그게 비록 죽음으로 이어지는 길이어도.
죽어서 신이 된 왕자
금성대군이 죽고 난 뒤,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경상도 순흥 지역에서 금성대군을 신으로 모시기 시작했어요. 왕족을 사람이 아닌 신(神)으로 모신 건 조선 왕조에서 매우 드문 일이에요. 유교 사회인 조선에서 이런 일이 생겼다는 건, 그만큼 백성들의 마음이 움직였다는 뜻입니다.
숙종 9년인 1683년에 금성대군과 함께 목숨을 잃은 분들이 복권됐어요. 그리고 숙종 45년인 1719년에는 금성대군의 신위를 모시는 단이 세워졌습니다. 현재도 경상북도 영주 순흥에 가면 금성대군 신단이 있어요. 매년 음력 10월 21일, 금성대군의 기일에 제사를 지냅니다.
서울에도 금성당이 있어요. 지금은 샤머니즘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금성대군이 무속 신앙에서도 신으로 모셔지고 있습니다. 왕이 되지 못했고, 뜻도 이루지 못했지만. 죽어서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어요.
금성대군이 우리에게 남긴 것
금성대군 이야기가 이 이야기의 진짜 결말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종은 위대했지만, 결과적으로 비극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문종은 올바랐지만, 아들을 지키지 못했어요. 단종은 아무 잘못 없이 희생됐습니다. 세조는 원하는 것을 가졌지만, 평생 대가를 치렀어요.
그런데 금성대군은요? 아무것도 얻지 못했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어요. 살아서는 역적으로 불렸습니다. 하지만 죽어서 신이 됐어요. 그리고 600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역사는 힘이 센 사람만 기억하지 않습니다. 옳다고 생각한 일을 끝까지 간 사람도 기억합니다. 금성대군의 촛불은 지금도 꺼지지 않았어요.
세종부터 금성대군까지, 조선 왕조의 가장 뜨겁고 슬픈 시간을 함께 걸어왔습니다. 이 시리즈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인물이 누구인지 댓글로 알려주세요 세종인가요, 단종인가요, 아니면 오늘의 금성대군인가요?